아이의 눈은 언제나 한 사람 만을 쫓고 있었다.
상냥함은 가끔 독이 된다. 상냥함은 곧잘 애정이 되고 애정은 금세 호감과 동경으로 변했다. 그래서 아이가, 작은 꼬마 숙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어떤 의미를 읽어냈을 때 파피루스는 작게 입술을 비틀 수밖에 없었다.
사랑에 빠지는 일을 비난 할 수 있을까. 나이와 이성과 지성이 모자란 사랑은 사랑이 될 수 없을까. 적어도 그는 사랑은 모자라기에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어딘가 모자른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은 채우는 행위임과 동시에 비워가는 행위이니까. 때문에 그는 어린 소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열기를 품는 다는 것을 어린 아이의 착각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거절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 사랑을 받아주는 일도 하지 않았지만.
그러니까 이건 그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한껏 치장한 티가 나는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작은 까치발로 사뿐사뿐 자신의 옆으로 다가오는 소녀의 행동의 사랑스러움을 인정하지만 딱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도록,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가능한 상처를 입히지 않을 범위에서 선을 그었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최대였다. 아, 그는 탄식을 삼킨다. 사뿐히 다가온 소녀의 손은 무척이나 따듯했다. 이 세상에 마음이 오직 두 개뿐이라 모든 사랑이 이뤄진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사랑은 제 짝을 찾지 못하고 온 세상을 헤매야하는 장님이었다.
“샌즈는?”
파피루스의 옆으로 다가온 소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의 형제를 찾았다. 소녀가 파피루스를 만날 때의 대부분은 그의 형제인 샌즈도 함께였다. 그러니 소녀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형은 정말 게으름뱅이야. 아직도 집에서 자고 있어.
정말? 프리스크는 놀란 얼굴로 눈을 크게 뜬다. 본래 눈이 작고 가는 프리스크의 눈이 크게 뜨인다고 해도 그리 커지지는 않았지만 파피루스는 그게 프리스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놀란 표정이라는 걸 알았다.
“벌써 세시인데?”
“형은 게으름뱅이니까. 정말이지, 형이 프리스크를 조금만이라도 닮아주면 좋을 텐데.”
자연스럽게 푸스스 세어나가는 웃음을 보며 프리스크가 따라 웃었다. 그럼 오늘은 우리 둘 뿐이야? 양 볼이 발갛게 물들어 수줍게 웃는 모습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바보도 아니었지만 무시했다. 파피루스는 상냥함이 얼마나 큰 독이 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상냥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녜헤. 그렇네, 오늘은 우리 둘 뿐이야.
미안해, 프리스크. 아이의 반짝이는 눈망울에 사과의 말을 삼키며 그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
그리고 그의 눈은 언제나 한 사람 만을 쫓고 있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언제나 간단하니까. 가까운 사람의 상냥함에 눈이 가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 아닐까. 그의 하나뿐인 형은 둥글고 고운 예쁜 이마를 가지고 있었다. 강아지의 털처럼 하얗게 몽실거리는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엉키고 뻗치는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는 그 모습마저도 좋다고 생각했다. 감긴 눈꺼풀을 바라보며 웃는 자신의 눈동자를 형이 알고 있을까. 사랑의 경계는 언제나 모호해서, 이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역시나 이건 사랑이었다. 굿나잇 인사 대신 하는 입맞춤이 둥그런 이마 대신 그의 볼이나 입술을 훔치길 원하고, 제멋대로 까치집이 진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줄 사람이 자신이길 원했다. 처음 눈꺼풀이 열리는 순간의 반짝임이 자신을 향하기를 원했다. 그는 이걸 사랑이라고 불러야만했다.
그는 손을 뻗어 잠든 형의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흐트러진 머릿결을 정리했다. 둘둘 말린 이불을 펼쳐 웅크린 몸 위에 이불을 덮어주고 저녁노을이 스며드는 창가에 커튼을 쳤다. 저녁으로는 그의 주특기인 스파게티를, 간식으로는 프리스크가 주고 간 시나몬 버터스카치 파이를 준비했다. 낮의 시간이 달아났으니 아주 조금만 기다리면 그의 형은 늦은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눈을 뜰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상냥한 웃음을 보여주겠지.
원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입맞춤의 위치나 머리를 빗어주는 손길 같은 것들은, 그가 원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상냥한 자신의 형은 거부하지 않을 테고 금세 자신의 동생의 마음을 이해 할 터였다. 이해한다고 해서 그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적당한 타이름과 타협으로 그를 어르고 달래다가 결국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조용하게 넘치는 애정을 물 흐르듯 흘려보낼 터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을 안다. 그 눈에는 반짝이는 희망과 기대가 가득하다. 넘치는 애정이 상대에게 닿기를, 그리고 그 사랑이 자신을 바라보기를. 상냥함에 기댄 사랑이 애정을 속삭일 것이다. 어린 소녀가 자신을 향해 눈을 빛냈듯이 그의 형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도 사랑스러움으로 애정을 갈구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눈동자는 메마른 우물처럼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망울을 할 뿐이겠지만.
그 모든 결과의 끝이 메말라가는 마음의 우물이라는 것을 이겨낸다면, 그는 할 수 있었다. 그게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견딜 수만 있다면.
“.....heh.. 안녕, 팝. 좋은 아침이야.”
“...안녕, 게으름뱅이 형. 해가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야. 얼른 일어나지 않으면 파피루스표 스파게티는 쥐가 다 먹어버릴 껄?”
“그럼 안 되지. 금방 일어날 테니까 내 몫은 남겨달라고 전해줄래?”
지금 당장 일어난다면 오늘만 특별히 전해줄게. 파피루스는 샌즈의 손을 잡았다. 버석하게 마른 손이 손끝에 감긴다. 언제나 같은 작은 투덜거림과 잔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샌즈는 언제나처럼 웃으며 잔소리를 피해 방문을 나섰고 그 뒤를 따라 파피루스가 방을 빠져나갔다. 이제 집 안에는 다시 떠들썩한 온기가 차오를 시간이었다.
파피루스는 소녀의 사랑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의 사랑도 존중받길 원했다. 오늘도 그 이마에 사랑이 담긴 키스를 날리는 것을 바랬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길을 찾고 있는 장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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