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클로저스 데이제이
끔찍..
목덜미 위로 사뿐히 내려앉은 입술이 작게 벌어진다. 살짝 땀이 베어난 뒷목에선 짠맛이났다. 데이비드는 잔뜩 굳은 제이의 몸을 진정시키듯 팔안의 허리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어쩔 줄 모르고 굳어버린 제이의 몸짓에 서운한것은 사실이었으나 이유를 모르는것도 아니니 그정도는 넘길 수 있었다. 어쨌든 둘은 10년만의 만남이었고, 지금 당장은 그동안 하지못한 일을 하는것이 중요했다. 아파도 조금만 참게. 깊고 중후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 목소리가 포박처럼 제 몸을 끌어당기는 것을 제이는 느꼈다. 저항 할 틈도 없이 옭아맨다. 긴장한 어깨 위로 혀가 기어다니고 목덜미와 어깨를 연결하는 근육위로 하얗게 빛나는 이빨이 올라섰다.
뚝.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곧이어 질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제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지탱하기 위해 애썼다. 온몸의 감각이 자신의 뒷목으로 쏠리는 기분이었다. 제 몸을 순환시키던 피가 억지로 누군가에게 흘러가고있었다. 파고드는 이빨을 타고 혀 위를 기어 타인의 몸속으로 떨어진다. 순환구조가 엉망이 되어 이리저리 들썩인다. 생명이 들썩인다. 그 속에서 쾌감이 일었다.
흐릿해지는 시야 속으로 별이 튄다. 몸에 열이 오르고 다리는 힘을 잃은지 오래다. 다만 자신을 끌어안은 상대의 팔이 제이를 지탱하고 있었다. 형. 형. 이제 그만. 더 이상은 무리야. 내뻗은 손까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고 제이는 헛웃음을 지었다. 10년간의 부재가 어마어마하긴 했구나.
"....하아.."
"으...."
"미안하네. 너무 오랜만이라 조절이 힘들었어. 자네 괜찮나?"
"아니.. 안 괜찮아..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
"..내가 심했나보군. 편히 기대있게."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커다란 손이 제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조금은 걱정했는데. 다정한 손길이 기억속 그대로여서 제이는 작게웃었다.
"으으. 이번엔 진짜 너무했어. 10년치를 한꺼번에 뽑아간거야?"
"아니. 그렇게까지하면 자네는 미라가 되버리고 말껄. 적당히 3년치만 뽑았네."
"켁... 그만큼이나 먹고서.. 너무한다."
"너무한건 자네야. 어떻게 나한테까지 말도 없이 사라질 수가 있나."
내가 그동안 장로들 몰래 자네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면 그런말은 못할껄세. 데이비드의 엄한 목소리에 제이는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제이는 뱀파이어와 인간사이에서 태어난 쿼터였다. 본래라면 태어나는것이 극히 어려울 그 결실들은 운명의 장난처럼 반세기의 주기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대부분의 쿼터들은 뱀파이어의 성향을 짙게 물려받아 인간세계에 머물지않고 뱀파이어들이 사는 서쪽땅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이렇게 보내진 쿼터들은 반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종족내의 각별한 보호와 감찰속에서 살아야했다. 그 중에 한 일환으로 방금과 같은 흡혈이 있다.
반은 인간인 탓에 완벽한 육체를 가질수없는 쿼터들의 건강과 상태를 살피기 위해 각각의 보호자가 붙여진다. 그들은 1년에 한번씩 쿼터의 피를 흡혈하고 건강의 유무나 1년간의 대략적인 기억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을 통해 불운한 생각을 보이는 쿼터나 병을 옮길수있는 쿼터가 골라졌다.
본래라면 제이도 자신의 보호자인 데이비드와 항상 함께여야했다. 그 의도가 어찌되었든 보호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항상 함께 있어야했는데.. 신부인 세하와 계약을 맺는일도, 아니 애초에 계약을 맺는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제이는 세하와 계약을 맺을 수 있었고 계약의 강한 힘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제이가 슬쩍 고개를 돌려 데이비드를 바라본다. 기억속의 얼굴 그대로인 데이비드가 엄한 얼굴을 하며 자신을 바라보고있었다. 문득 유년기 시절 자신이 잘못을 저지를때마다 짓던 바로 그 표정이라는걸 깨닫고 제이는 웃음이 터져나오려던것을 억눌렀다.
"미안해. 형. 계약은 처음이라 그렇게 강력할 줄은 몰랐어."
"그래. 나도 아까 자네의 기억을 보았네. 계약을 맺었더군. 그것도 댓가없이."
"댓가가 아예없는건 아니고... 피를 주기로.."
"그건 당연한거 아닌가. 뱀파이어를 상대로 계약을 맺으면서 그정도도 생각하지 않았을리는 없겠지."
쯧. 마음에 안드는것 투성이인지 데이비드가 작게 혀를 찼다. 데이비드의 입장에서 제이가 계약을 맺고 자신도 모르게 세하를 따라 밖으로 나간것은 순전히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날따라 데이비드를 찾는 이들이 많았고 자신의 눈엔 어리지만 이제 성인이 된 제이가 제 앞가림정도는 충분히 해낼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종족내의 쿼터의 위치가 애매하긴 했으나 핍박 받는것은 아니었으니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것 쯤은 괜찮겠거니 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 그래서 데이비드도 제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어찌되었건 보호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것은 본인이었으니까. 그러나 세하에 대해서는 불만이 아주 많다. 인간이, 그것도 신을 모시는 사제가 서쪽땅을 찾은것도 짜증이 치미는데 본래라면 가능할리 없는 계약을 맺고 제이를 제 종부리듯 부린것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화내지마 형. 세하가 겉보기에는 쌀쌀맞아 보이지만 사실 귀여운 애야. 같이 있으면 좋아."
"....하아.. 자네는 너무 사람이 좋아."
응? 사람이 아니라 뱀파이어라고 하는게 맞지않아? 순진한 얼굴로 우스겟소리를 하는 제이를 보고있자니 기운이 쭈욱 빠진다. 데이비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쿼터인지라 성장이 빠른 제이는 벌써 데이비드와 키가 비등하다. 10년 전만해도 아직 젖살이 덜빠져서 귀여운 얼굴을 하고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성인 남성의 얼굴을 하고있다. 그게 아쉬우면서도 동시에 묘한 느낌을 주었다.
"못본사이에... 성숙해졌군."
"나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니까. 형한테는 아직 한참 어리게 보이겠지만."
"아니, 이제는 정말 남자다워졌어. 피맛만 농후해진게 아니야."
"칭찬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