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님 커미션으로 가려다 빠진 글. 정리해서 올리려고 했는데 넘나 귀찮은 것
“형새끼야 제대로 설명 못하면 죽는다.”
“그래, honey. 동생한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 줘.”
샌즈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난 밤 술에 취해 인사불성으로 집까지 기어들어온 건 기억이 나는데(정말로 기어서 들어갔다) 그 이후의 기억이 전혀 없다. 샌즈의 마지막 기억은 기어오느라 엉망이 된 무릎을 훌훌 털고 술에 취한 몸을 침대에 던졌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단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에 숙취로 끓는 배를 부여잡고 일어난 죄밖에 없는데. 그런데 왜 파피가 두 명일까. 심지어 한 명은 평소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독기가 빠진 사랑스러운 눈으로(!) 샌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뿐인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녹아내리다 못해 땅에 들러붙었다. 내가 술이 덜 깼나? 샌즈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길을 피해 허벅지를 슬쩍 꼬집어보았다. 아야. 아픈데?
“딴 짓하냐?!”
눈에 흉터가 진 자신의 동생이 소리를 빽 지르고 나서야 샌즈는 파드득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아.. 아니! 파.. 팝! 나, 나, 제대로 팝을 보고 있었어! 멍청한 게 뭐라는 거야! 평소와 같은 신랄한 욕설이 샌즈를 향했다. 빽 소리를 지른 파피루스가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샌즈를 바라보았다. 샌즈는 자신이 무언가 또 파피루스의 기분을 거슬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게 뭔지 몰라 안절부절 한 얼굴을 했다. 지은 죄가 많아서 어느 부분에서 화를 내는지 알 수가 없다. 미..미안.. 결국 샌즈는 매섭게 바라보는 눈초리에 기가 죽어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으, 씨발... 샌즈가 고개를 숙이자 파피루스도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던 모양인지 조금 누그러든 목소리로 샌즈를 닦달했다. 진짜 어제 일 기억 안 나? 목소리가 전에 없이 격양되어 있다. 샌즈는 파피루스에게 멱살을 잡힌 채로 눈을 도록도록 굴렸다. 아무리 떠올려 봐도 집으로 돌아온 기억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뭐라도 생각나지 않을까 싶어 처음 술을 마셨던 순간부터 기억을 떠올려보지만 술에 취한 친구 한 명이 코에서 술을 뿜었다는 것 밖에 떠오르지 않아 웃음만 터질 뻔 했다.
샌즈는 횡설수설한 말투로 어제의 상황을 중얼거렸다. 어제.. 분명히.. 술을.. 코에서... 술을 뿜어서.. 뭐라는 거야? 샌즈는 열심히 설명해보려 했지만 그 웅얼거리는 소리에 되려 화가 났는지 파피루스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시 소리를 지른다. 샌즈는 울먹거리는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 그치만 그것 밖에 기억나지 않는 걸. 솔직하게 말해서 집에 오는 길에 앞으로 쳐지는 몸이 무거워서 땅을 짚고 기어왔다고 말한다고 하면 분명 맞겠지. 아무리 기분이 좋았어도 술을 진탕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팝이 또 술 취해서 집에 오면 호칭을 쓰레기에서 개새끼로 바꾸겠다고 했는데. 오늘은 개새끼 소리를 듣기도 전에 분노한 팝에게 얻어맞아 죽게 생겼다. 샌즈는 꼼지락 거리는 양손을 마주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밤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고 동생의 말을 어기고 술에 취해 돌아온 자신은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다는 결론만 나왔다. 파..팝! 미안해..! 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죽지 않을 만큼만 때려줘!
“이 쓰레기가!”
“잠깐 동생. 아까부터 말이 심한데.”
“썅! 넌 또 뭐야!”
한동안 잊고 있었던 존재가 입을 열었다. 맞다. 누가 있었지. 샌즈는 살짝 실눈을 뜨고 파피루스의 옆에서 턱을 괴고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딱 봐도 잃어버린 파피루스의 쌍둥이 형제는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똑같은 얼굴이 샌즈와 파피루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눈에 흉터가 없다는 것과 무심해 보이는 나른한 얼굴 정도. 남자는 무심하게 파피루스를 바라보다가 가늘게 눈을 뜬 샌즈와 눈이 마주치자 사르르 웃는 표정을 지었다. 헉. 샌즈는 꿀꺽 침을 삼켰다. 자신의 동생과 너무 닮아서 소름이 돋았다.
“아~ 나 말이지. 글쎄. 그쪽 형의 사랑스러운 sweetie라고 해둘까. 그보다 그쪽은 내 honey를 쓰레기라고 부르지 말아주겠어?”
“뭐? 시발?!? 허어어어니? 이런 미친! 지랄하고 앉았네!”
이 빌어먹을 형새끼야! 너는 도대체 뭘 끌고 들어 온 거야! 파피루스의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고 샌즈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데 모르는 사실을 자꾸 물어보니 더 할 말이 없다. 눈앞의 저 남자는 누구고 어제의 자신은 뭘 했는지, 아마도 술에 취한 사실과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은 여전해서 샌즈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이 모든 현실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샌즈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내가 또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라 개다. 개. 아니. 이미 개지. 멍멍!
“너무 그러지 마, 동생. 그쪽 형은 어제 무리해서 허리가 많이 아플 텐데 그렇게 흔들면 무리가 가지 않겠어?”
“뭬..?!”
너무 놀라 혀가 씹혔다. 샌즈는 몸이 딱 굳은 상태로 비명을 질렀다. 샌즈의 멱살을 쥐고 흔들어대던 파피루스 또한 놀라 몸이 굳었는지 미동 하나 없다. 샌즈는 미동 없는 동생이 걱정(무서웠지만)됐지만 서둘러 자신을 붙잡고 있는 파피루스의 손을 풀고 남자의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뭐..뭐..뭐라고.. 방금.. 바, 방금..!
“어제 밤. 나랑. honey랑. 이 침대 위에서.”
“나.. 나..? 침..대...?”
응. 나랑 샌지랑 잤어. 동그랗게 말아 쥔 손가락 사이로 검지가 왔다갔다 빠르게 움직인다. 샌즈는 떡 벌어진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려다가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는 손길에 무언가 기억난 듯 소리를 질렀다. 꽥! 기억났다!
*
파피루스는 제 앞에서 길게 혀를 쭉 내밀고 상기된 표정을 짓는 상대를 보며 말을 아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말을 꺼내기만 하면 제 손을 혀로 감싸 할짝이며 머리를 부벼대는 통에 뭐라고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나는 그냥 선량하고 착한 소시민으로써 술에 취해 인생을 길바닥에서 굴리고 있는 취객을 집까지 데려다 주려던 것뿐인데. 답지 않게 베푼 친절의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지, 파피루스는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파..팝...”
개처럼 땅을 짚고선 남자가 파피루스의 이름을 불렀다. 파피루스는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지 않았다. 남자는 알아서 잘도 자신의 신상을 술술 불어댔다. 팝, 형, 형이랑, 야.. 야외플 하는 거야? 해, 해주는 거야? 나.. 나아.. 자, 잘 할게.. 무릎에 머리를 부벼오는 남자는 막무가내로 파피루스에게 매달렸다. 그래, 동생 이름이 파피루스구나. 나랑 이름이 같네. 동생이랑 이런 짓도 하는가 보구나. 그래. 그렇구나. 파피루스는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체향에는 술 냄새가 잔뜩 섞여 있어서 뭐라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 미치겠네! 파피루스는 별다른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정상적인 사고라면 남자가 제 손을 핥든, 몸을 부비든, 당장 도망이라도 가는 게 맞겠지만 문제는 남자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심각하게 파피루스의 취향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느 정도 취향이냐면, 술에 취해 자신에게 바짝 달아오른 몸을 부벼대는 걸 받아주고 싶을 만큼 취향이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것도 순전하게 자신도 남자의 모습에 꼴렸기 때문이었다.
아, 안 돼 파피루스. 당장 이 자리를 떠나자.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술에 취한 상대를 두고 무슨 생각을. 파피루스는 요염하게 제게 매달려오는 남자를 밀어내며 속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허억. 가사가 기억 안 난다! 남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파피루스에게 매달려 야한 말들을 내뱉고 있었다. 파압, 나, 나 준비 되어 있어..!
결국 파피루스는 제 사랑스러운 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진정이 필요 할 때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형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좋았다. 파란 눈동자와 앙증맞은 체구. 아직까지도 앳티가 나는 얼굴은 웃음을 지을 때 무척이나 사랑스러워진다. 파피-! 내가 담배는 베란다 가서 피라고 했어? 안 했어? 담배 다 뿐질러 버릴 거야~~? 헉.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에 파고드는 착각이 들었다. 퍼뜩 정신이 든 파피루스는 파르르 눈썹을 떨다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등골에 서늘하게 죄악감이 흘렀지만 형을 떠올려도 진정이 안 되는 아랫도리를 보니 이건 자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정말로 나랑 하고 싶어?”
“응.. 으응.. 하, 하고 싶어..”
“그 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응.. 팝.. 나, 나는, 언제나.. 후.. 후회한 적 없어.”
파피루스는 터져 나오려는 욕설을 집어 삼켰다. 부비적거리는 머리는 무릎을 기어올라 민감한 곳에 달하고 있었다. 거기 그렇게 누르면.. 윽.. 이대로는 정말 외설죄로 잡혀갈 판이다. 파피루스는 남자의 머리를 살살 헤집으며 달래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 한 다면. honey. 나 좀 봐봐. 익숙하게 지퍼를 무는 얼굴을 잡아 챈 파피루스가 남자와 눈을 맞췄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지...집..? 하..하지만.. 이거.. 처.. 처음인데.. 하.. 하고 싶은데..”
가는 길에 산책 정도는 시켜줄 테니까. 이대로는 잡혀 가겠어. 밖에서 하는 건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 돌아가자. 차근차근 설명하는 목소리로 말하니 눈에 뛰게 밝아진 얼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산책.. 산책도 조..좋아..
....그냥 산책이란 말에 만족한 모양이군. 술에 취해 상식이 완전히 결여 됐는지 천천히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하는 남자를 보며 파피루스는 뭐라고 말을 꺼낼까 하다가 헤헤 웃는 얼굴이 너무 자신의 취향이라 입을 다물었다. 사실 천천히 기어가는 모습이 생각보다 귀엽기도 하고 참 말도 안 되게 꼴리기도 해서 말았다. 파피루스는 먼저 몸을 움직이는 남자의 등 뒤를 따라가며 가만히 생각했다. 가는 길에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
*
파피루스는 남자의 이름을 물었다. 샌즈. 작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잠에 반쯤 취해 있었다. 샌즈는 비틀비틀 자신의 집까지 기어 파피루를 안내 한 뒤 얌전히 문 앞에 앉아서 파피루스의 손끝에 입을 맞췄다. 집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끝까지 기어온 샌즈의 손바닥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파피루스는 꼼꼼하게 샌즈의 몸을 살폈다. 맨 손으로 땅을 짚고 왔으니 혹시나 상처가 생기진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샌즈는 멍하니 파피루스가 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만족한 고양이 마냥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냈다. 귀엽네. 골골 거리는 고양이 같은 얼굴을 한 샌즈를 보며 파피루스는 다친 곳 하나 없는 몸을 풀어주었다.
“상.. 상 줘.. 파피..”
꼴리는 것과 별개로 이런 쪽의 취향은 없었던 파피루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Good boy. 하고 샌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개..니까 이게 맞는 거겠지? 과연 틀리지 않은 선택이었는지 샌즈는 사랑스럽게 입을 벌렸다. 응.. 착해.. 헤..헤..
그리고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