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

*달보러가는 길이었는데 이게 뭔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박사박 부서지는 눈꽃소리가 귓가에 맺혔다. 파피루스, 그 쪽 조심해. 한참 추위를 헤치며 앞서 걸어가던 샌즈가 뒤를 돌아본다. 종아리까지 오는 긴 장화에 파란 장갑과 목도리를 두른 샌즈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샌즈의 뒤에는 저와 똑같이 빨간 장갑에 목도리를 두른 파피루스가 조심조심 어정쩡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입술 사이로 하얀 김이 퍼져나갔다. 샌즈는 다시 입을 열었다. 팝. 말과 함께 퍼져나간 하얀 구름은 몽실몽실 허공에서 춤을 추다 금세 흩어져 찬 공기 속으로 녹아든다. 휘청휘청 걸음을 옮기는 동생은 굉장히 위태로워 보여 샌즈는 조금 다급하게 말을 내뱉었다.



걷기 힘들면 내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서 걸어.



샌즈의 말대로 먼저 지나간 자리를 따라 조금 깊게 파인 발자국 자리가 남아있어서, 뒤따라 걷는 이가 조금 더 쉽게 지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조심조심 발밑을 고르는 동생의 앳된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얼굴이 다시 피어오른 입김에 하얗게 녹아든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땅을 바라보던 얼굴이 고개를 드는 것을 보고 샌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샌즈.... 무슨 문제인지 울상 짓는 얼굴이 샌즈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팝? 무슨 일이야? 혹시나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싶어 샌즈는 자신이 걸어온 자리를 조금 되돌아갔다. 그런게 아니라...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선 파피루스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우는 소리를 냈다.



샌즈의 발자국이 너무 작아서 발자국을 못 맞추겠어.



허공에서 우물쭈물 거리는 손 위로 파란 장갑을 낀 손이 닿는다. 샌즈는 조금 소리 내어 웃었다. 그게 문제였어? 조금 융통성이 없을 정도로 천진난만한 동생은 사랑스럽다. 괜찮아. 조심해서 걸으면 돼. 샌즈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파피루스의 시무룩한 얼굴이 귀여워서 좋았다.


사무치는 추위만큼 깊게 내려앉은 밤거리를 따라 형제는 걸음을 옮겼다. 목적은 달이 보이는 거리의 끝.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 공원을 향해서였다. 오로지 그걸 보기 위해 두 사람은 두텁게 쌓인 눈 위를 걸었다. 저 멀리서 보이는 네온사인에 별빛이 가리지 않도록 두 사람은 높고 높은 곳을 한참을 올랐다.






같이 밤하늘을 본 게 언제였지.


달이 보고 싶어. 문득 터져 나온 그 말에 반응한건 샌즈였다. 낡은 티비에선 이제 막 무성영화의 주인공이 잠을 자기 위해 침대로 눕는 것이 보였다. 파피루스는 흘러지나가는 것처럼 말했다. 달이 보고 싶어.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그 말에 나른하게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난 샌즈는 겉옷을 챙겼다. 나는 별이 보고 싶은데. 한 세트로 만들어진 목도리와 장갑을 건네며 샌즈는 두툼한 겨울옷을 걸쳐 입었다. 샌즈가 옷을 다 입을 때까지 멀뚱히 샌즈를 바라보던 파피루스는 그제야 샌즈의 말을 이해하고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다. 샌즈, 지금 이 시간에 나가자는 거야? 밖에 너무 춥지 않을까? 보통 이런 걱정은 제가 하는 편인데. 이번에 괜찮아, 하고 걱정하는 얼굴에 빨간 목도리를 칭칭 감아준 것은 샌즈였다.




그냥 문득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고 싶어서.


같이 밤하늘을 바라보았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는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하늘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특별한 것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았고 일상은 지나치게 고되게 파고들었다.


별을 보는 게 내 꿈이었어. 술기운에 조심스레 터져 나왔던 내심은 이제 더 이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너랑 같이 별을 보고 싶었어. 발걸음이 멈춘 끝에 하얗게 펼쳐진 눈밭과 그 위에서 반짝이는 달빛과 은하수의 바다 앞에서 샌즈는 작게 숨을 헐떡였다. 너와 함께면 뭐든 특별해지니까. 의미를 잃어 퇴색된 세계에도 빛을 주니까. 아. 그래도.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광경은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예쁘다.”

“그러게.”



마주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파피루스의 발갛게 달아오른 볼이 작게 움찔거렸다. 정말 예쁘다. 샌즈. 응. 역시 예쁘네. 샌즈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특별하지 않아도 여전히 별을 아름답고, 그 위의 달은 곱고 수려했다. 이걸 잊고 있었다니. 샌즈는 조심조심 마주 잡은 손을 떼어내곤 하얀 눈밭 위에 제 몸을 누였다. 쏟아질듯한 밤하늘의 풍경이 텅 빈 어둠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한 때 꿈꿨던 간절함을 모두 텅 빈 눈구멍 속으로 모두 집어 삼키듯이 흘려 넣고 제 옆에 마주 눕는 온기에 웃음지었다. 이렇게 좋을뿐인데 무엇에 특별함을 주었던 건지.


파피루스. 샌즈가 조용히 파피루스를 불렀다. 응? 파피루스가 고개를 돌려 샌즈를 바라본다. 세상에 단 둘 뿐인 텅 빈 눈이 서로를 마주보고, 반짝이고, 아. 좋다.


잊고 있었다. 밤은, 특별하지 않기에 더 사랑스러웠다.




'언더테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브샌즈  (2) 2016.06.30
허니머스타드  (1) 2016.06.20
파피샌즈 불면증  (1) 2016.06.18
ㅁ님커미션 원본 [모브샌즈]  (0) 2016.06.16
ㅁ님 커미션 원본 공개[파피샌즈]  (0) 2016.06.1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