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땀에 젖은 티셔츠는 돌돌 뭉쳐 바닥으로 떨어진지 오래였다. 이제 남은건 고무줄이 늘어나 쉽게 벗겨지는 반바지와 속옷뿐인데 이 이상의 행동에는 어지간히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벗으면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마치 눈앞에 누군가의 생명과 연결된 빨간 버튼을 눌러야만하는 기분과 흡사했다.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는거 아니야? 마음의 소리가 소곤소곤 귓가에 울렸다. 샌즈는 바지를 벗으려던 자세 그대로 허리에 손을 얹고 제 맞은편에 앉아있는 파피루스의 하얀 발가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건 정말 아닌거 같은데. 딱 한 시간 동안을 고민하고도 아직도 정리 되지 못한 감정들이 옷을 벗는 손길을 막는다. 이건 아니야! 빽 소리를 지르는 마음속의 목소리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란을 피웠다. 물론 그건 샌즈의 속마음이었기 때문에 샌즈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도저히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질 않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괜히 있지도 않은 누군가에게 성을 내며 샌즈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라도 말을 바꿀까 싶어 거절의 말을 혀끝까지 끌어올려도 자신을 애타게 바라보던 파피루스의 파란 눈동자를 떠올리니 도저히 안 된다는 말이 도저히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샌즈도 저항을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한번마안-. 잘하지 않는 아양 섞인 애원의 목소리를 간신히 떨쳐내며 샌즈는 엄한 얼굴을 했다. 안 돼. 그러나 다음 순간 파피루스가 짓는 표정에 샌즈는 입을 다물었다. 가련하게 축 처지는 어깨와 실망이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는 제 심장이 어찌나 저릿했던지. 샌즈는 힘없이 제 손을 잡은 파피루스에게 차마 거절의 말을 내뱉지 못하고 안 돼, 에 안의 말끝을 흐리며 나지막하게 돼. 하고 중얼거렸다. 그 다음은 말 안해도 뭐.
숨 막히는 죄악감을 무시하고 제 이성과 관념을 억누르는 일은 파피루스의 고백을 받아들였던 그 날을 뿐인 줄 알았는데. 어째 한 번 선을 넘고 난 이후에는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마냥 속수무책이었다. 샌즈는 발끝을 보던 시선을 조금 들어 파피루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대로 반짝이는 눈망울과 눈이 마주쳤다. 곧바로 사르르 녹아드는 눈꼬리도. 방법이 없다. 샌즈는 과감하게 바지를 끌어내렸다.
마지막 속옷을 벗어버리지 못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천천히 다리를 잡아 벌린다. 아무리 볼꼴 못 볼꼴 다 보여줬다 하더라도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샌즈는 화르륵 달아오른 고개를 숙였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손을 뻗었다. 아직 벗지 못한 속옷 위로 손길이 몇 번 머무르는가 싶더니 꿀꺽 침을 삼킨 샌즈가 하얀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얼굴이 홧홧하다. 어디 그뿐인가. 딱 죽고 싶은 심정이다. 스트립쇼도 아니고 타인 앞에서, 그보다 제 형제 앞에서 자위하는 형이라니. 이성과 도덕심이 아직도 머리 한 구석에서 데굴데굴 몸을 굴리며 손길을 멈추라며 아우성을 쳤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그러면,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한 행위는 멈추는 일은 처음 일을 시작하던 순간만큼이나 힘겹고 어려운 법이었다. 안 돼,하고 다급하게 울리는 머릿속의 갈등에도 손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샌즈가 푹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제 물건이 동생의 눈앞에서 점점 발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유쾌하지 못 한 상황이었지만 제 몸의 욕구에 충실하게 반응하는 뇌가 좀 더 정확한 자극을 바라고 있었다. 그에따라 아무렇게나 성기를 손에 쥐고 주무르던 손길이 좀 더 농밀해졌다. 단순하게 손에 쥐고 흔들거나 주무르는 것보다 더 다양한 손놀림을 시작하자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는 속옷이 불편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제 동생 앞에 내보일 성기가 부끄러워 어떻게든 사수하고 싶었지만 움직임이 너무 불편했다. 샌즈는 적당히 숨을 내쉬며 고민하다가 끝이 조금 젖은 속옷을 끌어내렸다.
제 것을 만지작거리며 속옷을 벗는 샌즈를 도와 파피루스가 손을 뻗었다. 샌즈가 기겁했지만 파피루스의 도움으로 금방 벗을 수 있었다. 파피루스의 손에 끌려 발목까지 내려간 속옷을 보고 샌즈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머릿속에서 빽빽 붉은 등을 키던 경고등이 정신없이 돌아가더니 하얀 섬광과 함께 터져버렸다. 샌즈의 머릿속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두 가지 감정 중 하나가 결국 백기를 올렸다. 그래. 내가졌다. 너 하고 싶은대로 해.
수치심보다, 사람들이 정해둔 상식의 선보다, 죄책감보다, 한 번 선을 넘은 욕망은 더 강력한 충동을 가지고 있었다. 샌즈는 흘러내려 다리를 덮는 티셔츠를 적당히 끌어올리다가 신경질적으로 입에 물었다. 아무리 끌어올려도 거추장스럽게 손등을 덮는 티셔츠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