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테일

없는 하루

체리롤 2016. 5. 24. 20:45


▲이거 들으면서 씀





어제는 있었는데 오늘은 없는 것.

아침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것.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 함께 했는데 지금은 아닌 것.


작게 열어둔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말아 쥔 이불 사이로 파고들었다. 작게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가 오늘도 요란하다. 이게 내 입에서 나온 기침 소린가. 병든 사람 마냥 힘겹게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는 내 입에서 터져 나왔어도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다. 혹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침 소리는 아닐까.


‘콜록.’


아, 그래. 내 입에서 나는 소리였군.


‘콜록, 콜록’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해. 목구멍으로 타고 넘어가는 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 아래로 내딛는 발끝이 힘을 잃어 무거운 몸이 땅으로 쓰러진다. 이게 무슨 일이람. 아픔을 느낄 세도 없이 쓰러진 몸이 뒤집힌 채로 천장을 바라본다. 멀뚱하게 떠진 눈동자가 깜빡였다.


아, 그래 알겠다. 기침 소리에 손끝 하나 까닥하기 힘든 몸. 어질 거리는 머리. 감기인가보군. 잘 알겠어. 그러고 보니 열이 나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손을 뻗어 뒤집힌 몸을 바로 잡았다. 약이 필요하겠어. 오늘은. 그래, 오늘은 언젠지? 어제는 아니고 내일도 아닌 오늘은. 그래 오늘은. 시간은 몇 시지? 아침은 먹었나? 저기, 나 아침은 먹었어? 팝? 아, 아침을 안 먹었구나. 알았어, 바로 약 먹을 테니까 잔소리 좀 하지 마.


홀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 이렇게 힘들고, 홀로 먹는 밥이 이렇게 차가웠던가.


몸을 움직이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힘이 없다고 하지만 말이야. 힘이 없다고 몸을 움직일 수 없으리란 법은 없잖아. 감기란 게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고. 내 몸 하나 간수할 정도는 된 단 말이야. 휘적휘적 대충 뻗는 다리들이 아무렇게나 땅을 디디고 있다. 자신 있게 얘기한 거 치곤 휘청거리는 몸이 조금 힘이 들었다.


계단을 내려와 부엌에 선다. 키에 비해 높게 만들어진 주방 앞에 서서 그릇하나, 숟가락 하나, 냉장고에서 꺼낸 우유와 시리얼 하나. 아침밥으론 이게 최고지. 언뜻 본 냉장고 안에 팝이 만든 스파게티가 썩어가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무시하도록 하자. 그리고 작게 기도. 잘 먹겠습니다.


밥을 먹고 나면 낡은 쇼파에 누워 티비를 본다. 일은 나가지 않았다. 항상 빠듯하던 살림살이가 나아지니 게을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언제부터 나가지 않았더라. 어제였나.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나왔더라. 아니, 그런 게 무슨 상관이겠어. 돈은 충분 할 정도로 많은데. 그 돈으로 팝이 좋아하는 스파게티의 재료를 사고, 피규어를 사고, 옷을 샀는데도 많은 돈이 남았다. 그걸로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어.


그래서 네가 기뻐했던가?


손끝이 허전하다. 분명 손을 잡고 티비를 봤던 거 같은데. 이 시간엔 뭘 했더라. 같이 웃었던 거 같은데. 팝. 리모컨이 너무 멀리 있어. 재미없다. 가져 다 줄래? 게으름이 아니야. 그냥 네가 가져다 줬으면 좋겠어. 알았어알았어. 움직이면 되잖아. 브라운 관 속의 여자가 웃었다. 네가 좋아하던 여자네.


어라. 지금 몇 시지? 자꾸만 시간이 헛돌고 있어. 지금의 나는 뭘 해야 하지? 약은 먹었나? 아니, 아직 먹지 않았어. 그래, 약을 먹자. 팝. 약이 어디에 있지? 거실 서랍 두 번째 칸? 아무 것도 없는데? 뭐? 사러 나가겠다고? 아니야. 너무 늦었어. 시간도 늦었는데... 지금 몇 시야?



약 먹었어?

바람이 차서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약 어디 있어?

아직 안 먹었어.

기침 소리가 오늘도 요란하다. 이게 내 입에서 나온 기침 소린가. 병든 사람 마냥 힘겹게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는 내 입에서 터져 나왔어도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다. 혹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침 소리는 아닐까.

네가 좋아하던 여자네.

지금 몇 시야? 시간이 너무 늦었어.

시간이 헛돌고 있어. 이제 일은 나가지 않아도 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어. 뭐든 해줄 수 있어. 팝? 리모컨 좀 가져다 줄래?


팝?


어딨어?

어제는 있었잖아.



어제는 있었는데 오늘은 없는 것.

아침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것.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 함께 했는데 지금은 아닌 것.


네가 없는 하루는 이렇게 괴로웠던 가. 내일도, 그 내일도, 그 다음의 다음도. 네가 없어. 눈을 감았다 뜨면 매일이 내일이 돼. 어제의 네가 없어서 내가 혼자가 돼. 팝? 내가 보고 싶지 않아? 어디에 있는 거야? 과거의 나는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없는 것. 오늘의 나에게 없고, 내일의 나에게 없는 것.

전부를 가지고 있는데 네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하지?

네가 없는데 전부를 가지고 있으면 나는 행복할까?

소중한 건 품안에 움켜쥐고 놓아줘서는 안됐는데.

팝? 내가 잘못했어. 다신 놓지 않을게.

팝? 어딨어?

어디 간 거야.

나를 두고, 너는 어디 간 거야.

많은 소중한 것들 중에서도 네가 필요해.


팝? 

약 어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