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테일

허니머스타드 트위터썰

체리롤 2016. 5. 17. 02:10



*썰▼







하얀 색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감히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담았던 것은 언뜻 바라보았던 옆모습이 언제나 실금 같은 상처에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독한 폭염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더운 열기가 사람들의 눈물을 앗아갈 정도로 뜨겁게 타오르던 날. 창밖에선 매미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고 활짝 열어둔 창가에선 더운 바람이 슬금슬금 교실 안으로 들어와 여린 꽃잎 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작은 책상 위에 올려진 하얀 꽃다발이 바람결을 따라 춤을 췄고 텅 빈 자리가 미칠듯이 허전한 날이었다.


하얀 국화가 한가득 쌓여있던 책상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 파피루스는 결국 장미 한 송이를 샀다. 곱게 포장 된 장미는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간 교정 안이 어둠으로 물들었을 때서야 꺼내들 수 있었다. 잘가. 그는 아무도 없는 교정의 한 구석에 서서 시들어가기 시작하는 국화꽃 사이로 장미 한 송이를 놓고 인사를 건냈다. 미약한 울림이 가늘게 떨어져 내렸다.


문득 파피루스는 아이의 생김새를 떠올려본다. 조용하고 말수가 없어 교류가 적었던 클래스 메이트. 험악하게 생긴 생김새와 달리 유순하게 내려가던 눈 꼬리와 바람이 불때마다 언뜻 보였던 작은 흉터. 하얗게 반짝이던 목덜미. 작게 벌어지던 입술과 항상 제게만 들려주었던 세 음절. 제대로 말 한 번 건네 본적도 없으면서도 그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은 것은 유달리 그 아이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다. 투명하게 빛나던 속눈썹이 가늘게 휘어지던 순간을 파피루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왜 너는 그 날 웃었을까.



파피루스의 무거운 발걸음이 달빛에 메여 긴 그림자를 매달았다. 눈살에 파묻히던 눈 꼬리가 아롱아롱 파피루스의 눈에 맺혀 잊혀지지 않았다. 왤까. 내가 너에게 죄인이기 때문일까. 파피루스는 기억을 더듬는다. 매미들이 울음을 토해내던 날. 그 아이의 가는 속눈썹이 영영 빛을 바라보지 못하던 때. 그래, 자살했을 때. 경찰들은 그 아이가 입 안 가득 물고 있던 거품 사이에서 하얀 알약을 발견했다고 했다. 아이의 품안에서 발견한 작은 유리병 안에서 흘러내렸던 다량의 별사탕과 하얀 알약. 아이는 그걸 입 안 가득 물고 죽었다. 그랬다고 했다. 참담한 표정의 담임선생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파피루스는 선명하게 그 장면을 떠올렸었다. 곱게 감긴 눈과 작은 병을 끌어안은 채 웅크린 몸. 하얀 목덜미. 아이의 입가에서 흘러내렸을 달큰한 숨과 진득한 타액을 떠올리며 파피루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떠올리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장미를 선물하고, 잘가. 하고 인사하던 그는 죄인이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자신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든 약통이 바로 그 죄의 증거였다.


무지도 죄가 될 수 있을까. 아니, 무지라는 이름으로 그 죽음을 더럽히기엔 그의 죄는 가볍지 않았다. 이건 오만과 무관심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왜 몰랐을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아이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했을 때, 왜 자신은 그것을 그저 우월감으로만 남겼을까. 손 안에 올려주던 하얀 알약이 무게를 더해갈 때마다 진해지는 눈동자의 색을 왜 몰랐을까. 아. 죄악감이 어깨 위로 떨어져 파피루스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작은 호의에서 시작된 감정은 그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아이의 죽음을 인도하던 것은 파피루스였다. 선택은 아이의 몫이었지만 그 죽음을 도운 것은 여전히도 그였다. 작은 병에 담긴 별사탕. 입안에서 퍼지던 단 맛에 살풋 찡그려진 얼굴이 웃음을 만들었을 때. 고마워. 작게 벌어지던 입술이 세 음절을 내뱉었을 때. 여전히도 그는 아이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왜 너는 항상 그 말만 했을까. 왜 너는 그렇게.. 그렇게-...



작은 원망이 입 속에 맺혔다 사라졌다. 눈시울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느 날 보았던 그 아이의 눈가처럼 붉게. 그러나 파피루스는 그 아이처럼 웃을 수 없었다. 그는 하얗게 웃는 법 따위 모른다. 아이처럼 슬픔을 삼키는 법을 몰랐다. 자신의 죄는 그렇게 무겁게만 느껴졌다. 


하얗게 웃는 얼굴이 마치 혼자만의 비밀 같아서, 말 한 마디 조차 제대로 건내지 못한 주제에 왜 자신은 자만했을까. 단지 한 순간의 실수라고 하기엔 그는 자신의 무지를 너무나도 기뻐했다.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던 아이에게 사탕을 건내주듯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밤을 선물했다. 지금에서야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입밖으로 낼 수도 없었다. 그 대가로 이제 그는 다시 불면의 밤을 보내야했다.


「고마워.」 


낮은 목소리가 속삭인다. 햇살에 파묻히던 하얀 얼굴이 행복해보인다. 아무도 모르는 마지막 날에. 그러니까 아이의 죽음을 위해 파피루스가 작은 호의를 베풀었던 그 날에. 아이는 처음으로 희미하게 반짝이는 미소가 아닌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 그리고 행복한 얼굴로 그에게서 멀어졌다. 파피루스를 떠나 저멀리 죽음으로 걸어가는 마지막까지도 파피루스는 아이의 작은 등을 가볍게 떠밀고 우월감에 젖어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용서 할 수 없었다. 파피루스의 후들거리는 다리가 달에 베여 땅으로 쓰러졌다.


파피루스의 떨리는 손이 제 바지주머니로 향한다. 툭 굴러나온 약통이 데구르르 굴러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파피루스는 손끝에 닿는 구깃해진 종이를 더듬었다. 아이가 가볍게 발걸음을 떼던 자리에 남아있던, 마지막 남은 아이의 흔적이었다. 「사랑하는 나의 p에게.」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편지의 첫문장이 날카롭게 가슴에 박혀 이유 모르게 괴로워했던 날은 이제 그 아이의 기일이 되었다.


지금 느끼는 감정들은 지독한 혐오일까, 연민일까, 죄악감일까. 파피루스는 알지 못했다. 타인. 나와는 다른 사람. 연을 맺은것도 아닌 잠시 스쳐가는 인연은 파피루스의 발목을 잡았다. 죄악감의 아주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지도 몰랐다. 남이니까. 너와 나는 정의 조차 내릴 수 없을 만큼 너무 먼 타인이니까. 그러나 아이의 웃음은 여전히도 파피루스의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하얀 얼굴. 몸 곳곳에 새겨진 비밀스런 흉터를 끌어안고 있던.


파피루스는 눈을 감았다. 한사람의 인생이 제 손끝에서 끝난 무게를 그는 잊지 않았다. 잠깐의 죄악감이 그의 인생 전부를 삼키지는 못할지언정 그의 책임감 위에 무겁게 매달렸다. 파피루스는 아이의 마지막 흔적을 손 안에 움켜쥐었다. 그냥, 다만, 어쩐지 하얀 국화꽃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너를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