솹팝이 매정하게 굴어도 그동안은 자기는 이름으로 묶인 사이니까. 샌즈가 둘이니까 둘 중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처음 보는 순간 느낀 운명이 맞을 거라고 위안하면서 모든 걸 견뎠는데 어느 날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이 크게 틀어져서 기분 안좋아하는 솹팝 주위 기웃거렸다가 멘탈 털리는 펠샌 보고싶다.. 펠샌 잘못은 아니고 펠팝 잘못..도 아니고 그냥 펠팝이랑 솹샌이 알콩달콩하는거 보고 개빡친 솹팝이 주변 기웃 거리던 펠샌에게 심하게 화 내는거 보고싶어. 내 네임버스 세계관은 이름이 새겨진 곳이 지워지면 후유증이 심하게 오는 세계관인데 솹팝이 네 손에 새겨진 이름은 너 따위의 이름도 아니고 너한테 새겨진 이름도 내 이름이 아니라면서 펠샌 허벅지에 있는 이름 지워버리려고 하는 거 보고 싶어. 펠샌 심하게 충격 받아서 벌벌 떨면서 빌었으면 좋겠다. 한 번도 제발이라는 말 쓴 적 없는데 자기 붙잡는 솹팝 피해서 도망다니면서 울부짖으면 좋겠다. 제발 그러지 말아줘. 그러지 마. 제발 파피. 팝. 제발, 부탁할게. 제발. 제발 지우지 말아줘. 제발. 팝. 파피루스.
칼로 이름 베어버리려는 솹팝 피해서 기어다니면서 절망했으면 좋겠다. 자기 몸에 새겨진 이름마저도 싫을 정도로 자신을 싫어한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아서. 왜 싫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솹팝은 펠샌이 이렇게 까지 싫어할 정도의 이유는 없었지만 제 운명이라고 믿고 있던 형제를 채간 펠팝에 대한 질투와 분노를 펠샌에게 풀고 있는거겠지. 펠팝에 대한 증오가 펠샌한테 그대로 옮겨가서 밑도 끝도 없이 싫어지는거야. 펠형제가 싫고 펠샌이 자기 형이랑 이름이 같다는 것도 싫고 자기한테 들러붙는 것도 싫고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자기 보며 어색하게 웃는 펠샌 보는 순간 눈이 돌아가는거지. 사랑한다고 말하지마. 너 따위가 형의 이름을 쓰는게 싫어. 웃지도 마. 기분나빠. 그깟 이름이 뭐가 중요하다고 운명의 상대니 뭐니 나불거리면서 사랑해달라고 매달리는거야. 네 잘난 동생에게나 매달렸어야지. 나는 내 형을 뺏겼는데. 쓸모없어. 지워버려. 하면서 분노를 표출하고 펠샌은 솹팝 피해서 기어다니면서 절망하고. 펠샌이 엉엉 울면서 애원하고 부탁하다가 결국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나서야 펠샌 놓아주는 솹팝 보고싶다. 잔뜩 흥분해서 헉헉 거리다가 칼 집어 던지고. 그 옆에서 펠샌은 울고. 수 없이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다가 먼저 떠나버리는 솹팝보면서 또 슬퍼하는 자기가 싫어서 울고. 울고 울다가 눈물 마를때쯤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펠샌. 그리고 그 날 밤 펠샌은 파피루스의 이름을 지져버림. 펠샌이 미안하다고 하는 게 보고싶다.
운명의 상대를 지워버린 펠샌은 영원히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저주를 가지게 되고 기쁨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됨. 영원히 슬픔 속에서 살아야해. 운명을 져버렸으니까 그정도의 대가는 필요하지. 반쪽을 잃어서 공허하게 살아야하는 펠샌.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정원을 가득 채웠다. 파피루스는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욕설을 내뱉었다. 어딜 도망가. 강하게 지면을 박차는 발끝에 힘이 들어간다. 파피루스는 손을 뻗어 제 곁을 떠나려는 하얀 머리카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진 몸뚱이가 애처로울 만큼 발버둥 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스스로 제 손을 떠나보려 한 적 없는 몸은 이번만큼은 예외라는 듯 손을 휘젓고 발을 버둥거리며 파피루스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애를 썼다. 작고 하얀 벌레 같아. 파피루스는 버릇처럼 입술을 비틀며 손에 쥔 머리카락을 강하게 잡아 당겼다. 쉽사리 딸려온 하얀 얼굴이 공포로 물들어 있는 게 보였다.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얼굴은 금세 죽어버릴 것 같은 목소리로 파피루스의 이름을 부르는 게 들려왔다. 파..파피.. 파피... 눈가에 맺힌 눈물이 금세라도 터져 흘러내릴 것처럼 그렁거리는 것을 보자 파피루스는 분노와 혐오로 머릿속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 이름 부르지 마.
“시끄러워.”
비명소리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악을 쓰는 듯 시끄러웠고 흐느끼는 것처럼 지저분했다. 억지로 벗겨진 바지와 도망가기 위해 애쓰느라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 기어가느라 바닥에 쓸린 빨갛게 달아오른 맨살. 눈앞이 어지럽다. 파피루스는 자신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는 상대의 발목을 잡았다. 주르륵 딸려오는 몸은 생각보다 더 가벼웠다.
“파피! 팝!”
자신의 발목을 잡아오는 서늘한 손의 주인이 이름의 주인임을 알면서도 샌즈는 공포와 애절함으로 파피루스의 이름을 불렀다. 공포보다 더 큰 절망이 제 몸을 집어 삼키기 일보직전이었다. 붙잡힌 발목이 시큰거린다. 항상 따듯하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제 발목에 들러붙어 저를 놓아주지 않는 다는 사실이 이렇게 큰 절망을 가져 올지 샌즈는 알지 못했다. 제 이름이 박힌, 언제나 좋아하던 커다란 손이, 이제는 자신을 옭아매는 거대한 덫이 되어있었다. 절망이 큰 입을 벌리며 웃는다. 진실이 거짓으로 가득한 머리맡에 서서 비밀을 속삭였다. 샌즈는 눈을 감고 울부짖었다. 파피..! 파피루스!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다시 도망가려는 몸을 억누르며 파피루스가 악을 질렀다. 제 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온갖 감정들이 혀를 타고 튀어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잘 숙성시켜왔던 증오가 혀끝을 타고 미끄러졌다. 기분 나빠! 나를 보는 그 빨간 눈동자가 싫어! 사랑하다고 말하지 마! 귀를 잘라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네 사랑을 내게 강요하지 마! 악을 지르는 파피루스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파피루스의 몸이 분노로 바르르 떨려왔다. 공포로 물들었던 샌즈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게 보였다. 하얀 벌레. 기분 나쁜 벌레. 파피루스는 급하게 샌즈의 바지를 잡아당기며 숨을 헐떡였다. 기분 나빠. 그 지긋지긋한 운명론 따위로 내가 망가졌어. 나의 샌즈가 너의 그 잘난 동생에게 넘어갔다고. 사랑 받고 싶었으면 내가 아니라 네 동생의 바지자락이라도 물고 늘어졌어야지. 내가 아니라. 이제 나도 한계야. 여기서 끝내자고. 여기서. 너도, 나도.
“파피루스! 세실! 제발! 제발! 제발! 안 돼! 제발 그러지 말아줘! 제발!”
샌즈는 울음을 토해냈다. 공포는 절망이었고 절망은 공포였다. 둘은 하나보다 더 가까워서 금세 샌즈의 작은 몸을 좀먹었다. 파피루스는 신체능력은 샌즈 보다 뛰어났고 체격부터 차이가 컸기 때문에 샌즈의 발버둥은 오래 지나지 않아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에 처박혔다. 헉헉. 넘어갈 것 같은 숨을 몰아쉰다. 샌즈는 파피루스가 항상 차고 다니던 검의 길이와 날카로움과 무자비함을 기억했다. 이제 곧 차가운 칼날이 제 허벅지에 박히고 사랑스러운 이름을 긁어낼 거란 것도. 무자비하게, 파피루스는 샌즈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그래서 샌즈는 고통스러웠다.
더 이상 절망은 없었다. 절망보다 애써 외면했던 진실이 먼저 무딘 칼날처럼 천천히 심장에 박히고 있었다. 샌즈는 흐트러진 숨을 몇 번이고 삼키다가 마지막으로 애원의 말을 내뱉었다. 제발. 파피루스. 네 이름을 지우지 말아줘. 제발.
“내 이름이 네 몸에 박혀있다는 게 끔찍하게도 싫어.”
발버둥이 멈췄다. 흐느낌은 거짓말처럼 멈췄지만 눈물은 쉴 세 없이 넘쳐흘렀다. 파피루스의 손이 제 검집으로 향했다. 이 고통을 끝내자. 가라앉은 목소리는 차분하고 부드러워서 꿈인가 싶을 정도였다.
“너도, 나도. 나는 충분히 고통 받았고, 네 운명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나는 내 형을 사랑해.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더 이상 괴롭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 끝내자.”
차마 묻지 못하고 눌러 삼켰던 진실이 샌즈의 눈앞에서 흔들렸다. 파피루스의 검이 샌즈의 오른쪽 허벅지, 그 안쪽, 파피루스의 이름이 적힌 피부 위로 내려앉았다. 힘없이 벌어진 허벅지 안쪽으로 천천히 핏방울이 맺힌다. 샌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랬구나. 나는, 네 고통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