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머스타드, 파피루스 후회하는 짧은 글.
*엄청 짧은 글인데 어차피 파이님이랑 썰풀던 게 너무 좋아서 쓴거라 상관없는 글
*후회공 파피루스.
가장 원망스러운 순간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다.
까맣게 내려앉은 눈동자는 투명할 정도로 깨끗했다. 마치 아무 색도 들어가지 않은 유리구슬 같다. 곱게 올라간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며 파피루스는 웃음 지었다. sweetheart, 날이 추워. 겨울바람이 하얀 볼을 스치고 지나가자 몸을 떠는 상대의 얼굴이 작게 일그러져서 파피루스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몹시도 추운 어느 겨울의 한 날이었다. 장갑을 끼지 않고 마주잡은 손끝이 시려왔으나 맞닿은 손바닥은 온기가 가득했다. 파피루스는 제 옆에 선 이의 목을 덮고 있는 목도리를 갈무리 해주려 했으나 아직까진 갑작스러운 손길이 낯설 것이란 걸 떠올리고 그만 두었다. 바람에 부딪치는 손끝이 시렸다.
응. 파피루스의 말이 끝난 지 한참 만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을 줄 알았던 상대의 발걸음이 조금 느려지더니 마주 잡고 있는 반대손이 작게 꼬물거리며 목도리를 정리하는 것이 보였다. 추운 겨울바람에 발갛게 달아오른 콧등이 지독히도 사랑스럽다. 파피루스는 끈기 있게 기다리던 대답을 듣고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가면 집이야. 보일러를 틀어뒀으니 따듯할 거야. 도착하면 코코아 마실래?
낮은 목소리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하니 다시 한 템포 늦게 답이 돌아온다. 응. 마시멜로도? 응.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불편할 만도 한데 파피루스는 좁은 보폭에 맞춰 걸음을 옮기며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파피루스는 조용하게 상대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다시 입을 열고, 가늘게 이어지는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조용하게 끊어지는 목소리가 몇 번이나 반복된다. 응. 응. 그래. 응. 되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같았지만 파피루스는 포기 할 줄을 몰랐다. -그래서, -그러니까, -그렇게 하자. 응?
*응.
샌즈. 발걸음이 멈췄다. 걸음을 멈춘 건 파피루스 쪽이었다. 응. 느릿하게 걸음을 걷던 상대도 걸음을 멈춘다. 파피루스는 숨을 삼키고 목소리를 삼키다가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의 죄는 차곡차곡 그 작은 몸에 쌓여 있다.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쌓여오다, 결국 죽어버린 작은 몸.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되어 까맣게 타죽은 시체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샌즈. 파피루스의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한 마디가 필요해. 자신의 죄를 마주해야 하는 죄인이 내뱉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애원의 말.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흉터로 남은 자리에는 새 살이 돋지 않았다. 아무리 애정을 퍼부어도 이미 담아낼 그릇조차 존재하지 않는 유리 조각은 다시 채워질 줄을 몰랐다. 숨을 삼킨다. 한 마디가 필요해. 너를 부를 수 있는 말. 차오르는 수많은 말들을 단 한 마디로 골라내고 있는 그 얼굴은 차라리 두려워하는 표정에 가까웠다.
*나를 사랑해?
아, 어리석어라. 앵무새처럼 같은 말들을 반복하는 상대의 무심한 얼굴이 가늘게 눈 꼬리를 접었다. 글쎄.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마주한 눈동자 속에 비치는 게 차오르는 것이 행복도, 애절할 정도의 애정도 아닌 오로지 자신이라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파피루스는 자신의 죄를 깊이 떠올려야 했다.
그가 사랑하는 샌즈의 눈동자는 투명한 유리구슬 같다.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품는 것보다는 모두 흘려보내길 바라는 유리구슬. 바닥에 수놓아지는 빛의 프리즘은 타고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 수많은 상처의 시간이 지나고 파피루스가 샌즈를 바라보았을 때, 그의 세상은 이미 오래전에 부서져서 그의 눈은 자신을 나타내기보다 타인의 세상을 눈에 담기를 원했다.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의 어리석은 과거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갉아먹었고,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대가로 파피루스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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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자국만 더 가면 꽃길인데 그동안의 가시밭길이 너무 아팠어서 마지막 한 걸음을 떼지 못하는 샌즈가 보고 싶다. 아니, 알고 있어도 갈 수 없는 샌즈가 보고 싶다. 이미 상처투성인 발로는 꽃길을 걸어도 그저 고통뿐이어서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는 샌즈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