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본브로
*얀데레 보고싶다.......
“쓸모없는 놈.”
샌즈는 벌벌 몸을 떨리는 몸을 감추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고통만 더 강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작게 몸을 웅크렸다. 고통이 뼛속까지 파고들어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덜덜 떨리는 온 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열기와 시린 감각이 동시에 몰려오는 오른쪽 다리는 반쯤 부서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고통에 혼미해져 오는 머릿속에서 비상벨을 울렸다. 생명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샌즈는 손뼈를 꾸욱 움켜쥐었다. 이렇게까지 당해버리다니. 끔찍한 고통과는 별개로 입 안이 썼다. 그래도 샌즈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속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갑작스런 공격에 방심한 탓이다.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는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적의 수는 많았고, 그는 너무 많은 적의와 미움을 받고 있었다.
파열이 일어난 정강이 뼈 부분에서 재 부스러기 조금과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파. 악 다문 잇사이로 신음이 세어 나오지 않게 하는 일은 익숙하지만 매번 힘겨운 일이었다. 샌즈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눈앞에 선 빨간 구두굽을 바라보았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시선은 샌즈가 뒹굴고 있는 눈밭보다 더 차갑고 매서웠다. 당연한 수순처럼 작게 혀 차는 소리가 이어진다. 샌즈는 귓가에서 이명소리를 들었다. 헐떡이는 숨소리에 가려진 그 소리는 자신의 비명소리였다.
다리는 아마 다시는 쓸 수 없을 지도 몰랐다. 솜씨 좋은 의사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고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작은 변두리 마을에 실력 좋은 의사가 있을 리 만무했고 무엇보다 약해진 괴물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지하세계의 이치인 탓에 의사를 부르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골드가 필요했다.
살림은 모자라진 않지만 넘치지도 않으니 상처를 치료하는 일은 자력으로 해결 할 문제였다. 파..팝.. 파피.. 샌즈는 떨리는 목소리로 파피루스를 불렀다. 죽지 않기 위해선 오직 그의 동생의 도움이 필요했다. 차가운 눈초리는 여전했지만 그래도 아픈 형을 두고 가지 않는 동생은 언제나 착하고 귀여운 소중한 동생이었다. 이대로라면 죽어버린 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샌즈는 부들거리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애원하는 듯한 시선이 파피루스의 붉은 눈동자와 얽혔다. 파피...
쯧. 다시 한 번 혀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붉은 머플러가 샌즈의 눈앞으로 떨어졌다. 그걸로 동여매던가! 파피루스의 신경질 섞인 목소리가 샌즈의 귀에 내려 꽂혔지만 샌즈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파..팝.. 내 동생..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번엔 정말로 파피루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지도 몰랐다. 크게 다쳐 다시는 다리를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샌즈는 파피루스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했다.
샌즈가 머플러로 자신의 다리를 동여매는 동안 파피루스는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집까진 알아서 가. 냉랭한 목소리였다. 응. 샌즈는 굳이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확인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정도면 충분하게 행복했다.
발걸음 소리가 귓가에서 멀어질 때쯤 샌즈는 고개를 들었다. 멀어져 가는 발자국과 저 멀리서 파피루스의 빨간 머플러 없이 검은 뒷모습만 샌즈의 눈에 아롱아롱 맺혔다 사라졌다.
*
다행히도 샌즈는 ‘지름길’을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만약 샌즈가 ‘지름길’을 사용할 수 없었다면 샌즈는 집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자신에게 악의를 품은 괴물들 손에 의해 처참하게 찢겨졌을 테지만 정말 ‘다행히’도 지름길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샌즈는 절뚝이는 다리로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만 아무리 ‘지름길’이라도 집 안까지는 사용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샌즈는 집 앞의 작은 수풀에서 집까지 걸어가야 했지만.
그건 샌즈에게 그다지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다친대다 이미 ‘지름길’을 사용하는 바람에 한계에 달한 샌즈의 몸은 집에 가까워질수록 고통이 그와 비례한 만큼 커지고 있었다. 문에 다다를 때까지 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상할 정도로 운이 좋은 일이었다.
숨이 미칠 듯이 가빠져 오고 있다. 샌즈는 어질어질한 머리로 문고리를 잡았다.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열쇠구멍에 열쇠를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지만 수차례 시도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 샌즈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집안으로 쓰러졌다.
간신히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 뒤에는 기억이 없다. 다만 샌즈는 잠결에 어떤 타는 듯한 격통이 자신을 덮쳤다는 걸 기억했고 흐느끼는 비명소리를 내질렀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이처럼 울음소리를 내뱉는 입가에는 달고 쓴 해열제의 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미끌거리는 타액의 맛이 약간. 아파. 아파. 샌즈가 비명을 질렀다. 아파? 그 위로 웃음소리가 매끄럽게 울음소리를 뒤엎었다. 샌즈는 꿈결에도 그 웃음소리에 두려워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게 그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샌즈는 자신의 손이 양 침대헤드에 고정되어 있으며 한쪽 다리에 감각이 거의 사라졌음을 느꼈다. 아니, 감각이 사라졌다고 해야 할지. 있어야 할 게 없는 느낌이었다. 샌즈는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아....”
샌즈는 멍청한 소리만 흘렸다. 샌즈는 제 몸이 묶여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을 일으키려 했었고 덜컹이는 소음소리와 함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기도 전에 몸을 일으키기 위해 자신을 지탱해줄 신체의 일부가 말끔하게 사라져있음을 깨달았다. 있어야 할 것이 없다. 그 상실감은 실로 대단했다.
이미 쓸 수 없는 다리라고 해도 전부 사라지는 것과 흔적만이라도 남아있는 건 달랐다. 그건 희망이라도 남기느냐, 혹은 모든 희망을 앗아가느냐의 차이였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불쾌감과 두려움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윽고 막심한 공포가 되어 샌즈의 목을 졸랐다.
지하에서 멀쩡하지 못한 육체는 재로 변하길 기다리는 장작과 같은 거였다. 죽기를 기다리는 사형수. 성큼성큼 제 주위를 맴돌던 죽음이 이제는 친근하게 다가와 목덜미에 매달렸다. 약한 자는 먹혀야지. 안 그래? 갈기갈기 찢어져 개들의 먹이로 던져지거나 강자들의 장난감이 되어 온 몸이 찢겨지거나. 그거 말고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도 없겠네. 낮은 웃음소리를 쏟아내는 죽음은 샌즈를 괴롭혔다. 그 말대로 죽음을 제외하고 샌즈가 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곤 집에 처박혀 그의 동생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 뿐 이었지만 그의 동생이 불구가 된 샌즈를 돌봐줄 거라는 희망은 없었다. 아아, 아아아아... 샌즈는 낮은 탄식을 흘렸다. 이제 서서히 밀려오는 고통의 잔재와 머리속 가득 차오른 공포가 샌즈를 괴롭히고 있었다.
“야, 쓰레기.”
일어났냐.
파..팝! 샌즈는 화들짝 놀라며 벌컥 열린 문 앞에 선 자신의 형제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텅 비어버린 머리에선 먼지 터는 소리조차 나질 않아 샌즈는 멍청하게 앓는 소리만 내뱉다가 눈을 감았다. 가능하면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양손이 묶여있어 그러지 못했다.
샌즈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그럴수록 점점 움츠러드는 자신의 몸도 느꼈다. 깊은 절망에 빠지는 기분이다. 제 형제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몸뚱이는 분명 찬 길바닥에 버려질 것이었다. 또한 샌즈 스스로도 그런 몸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큼 제 곁으로 다가온 형제에게서 아무 말도 없자 샌즈는 질끈 감은 눈을 뜨고 제 형제를 바라보았다. 언제나와 같은 옷차림과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 날카로운 이빨과 붉게 반짝이는 눈동자. 그리고 웃음. 만족스러운 웃음이 거기 있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샌즈조차 본 적 없는 처음 보는 형제의 웃음이.
그제야 샌즈는 아주 당연하지만 단 한 번도 떠올릴 수 없었던 한 가지를 떠올렸다. 너무 하찮고 하찮아서, 제 동생이 그럴 리가 없다고만 생각했던 한 가지. 자신의 팔을 묶은 것도, 어제까지만 해도 온전한 형태는 아닐지언정 멀쩡하게 그 자리에 있던 다리가 사라진 것도, 모두 자신의 동생이 벌인 일이라는 걸. 그런 당연한 생각을.
왜?
이유 따위 알 리가 없다. 그의 형제는 언제나 제 형제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가능하면 자신의 형제가 강하고 능력 있는 괴물이 되길 원했다. 주눅드는 시선도, 축 처진 어깨나 더듬거리는 말투도 모두 못마땅히 여겨왔던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굳이 다친 형제의 다리를 자르고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지 알 길이 없다. 왜? 파피, 왜? 샌즈는 더듬더듬 혀로 제 이를 훑다가 입을 열었다.
“파...피..?”
“왜.”
“왜.. 왜..? 아..아니.. 아니지...?”
샌즈는 다시 한 번 그 웃음과 마주해야 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 원하는 걸 손에 넣은 사람 특유의 오만하고 충만감에 찬 얼굴. 샌즈는 그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사랑하는 동생이 하는 일이라면. 샌즈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기며, 다시는 이 일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것을 암묵적으로 약속했다.
파피루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웃음을 지우고 아무렇지 않게 샌즈의 팔을 풀고 요깃거리를 가져다주며 제 할 일을 다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이상하게도 단 한 번의 욕설도 내뱉지 않았다.
샌즈는 멀뚱히 제 침대 옆 탁자에 놓인 빈 그릇만 바라보다가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침대로 미끌어 졌다.